중동발 위기를 넘을 두 마리 토끼, ‘마을 태양광’과 ‘차세대 원전(SMR)’
중동 지역을 둘러싼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한국의 에너지 안보 정책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의 약 70%를 들여오고 1차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훌쩍 넘는 한국 입장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이란발 위기를 오히려 청정에너지 전환을 앞당길 강력한 촉매제로 삼아야 한다며, 국가의 운명이 에너지 전환에 달렸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대내적으로는 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자립을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적인 투트랙 행보를 보이고 있다.
햇빛이 밥 먹여준다, 에너지 전환의 롤모델 ‘구양리’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한 시간 반 남짓 떨어진 70가구 규모의 작은 농촌, 구양리의 풍경은 에너지 전환이 지역 사회에 어떤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식당 하나 없고 이동조차 불편했던 130여 명의 이 마을은 2022년 1메가와트(MW)급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한 이후 전혀 다른 일상을 맞이했다. 태양광 발전으로 매달 1000만 원(약 6800달러) 안팎의 순수익이 발생하자, 마을은 이 자금을 개인에게 현금으로 배당하는 대신 공동 복지에 투자하기로 뜻을 모았다. 현재 일주일에 엿새씩 제공되는 주민 무료 점심을 비롯해 노인들을 위한 ‘행복 버스’, 탁구장, 각종 문화 활동이 모두 이 태양광 수익으로 돌아가고 있다.
전주영 이장은 매일 점심을 함께 먹으며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주민들 사이의 연대감이 눈에 띄게 끈끈해졌다고 설명했다. 개별 소득으로 돈을 나눴다면 단절감을 느꼈을 사람들이, 식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며칠 만에 서로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공적인 구양리의 사례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햇빛 연금 마을’ 프로그램의 전국적인 표준 모델로 자리 잡았다. 당초 올해 150개 수준이던 마을 조성 목표는 단숨에 700개로 상향 조정됐으며, 2030년까지 총 2500개 마을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끌어올리고 2040년에는 석탄 발전을 완전히 퇴출하겠다는 정부의 기존 청사진과 맞닿아 있다. 중동 사태를 기점으로 정책의 속도와 정치적 절박함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예산 지원도 대폭 늘어났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5000억 원이 새롭게 편성되었고, 전력망 인프라 확충 등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연간 지원금은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100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620조 글로벌 SMR 시장 겨냥한 K-원전의 질주
국내에서 태양광이 지역 사회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면, 밖에서는 미래 에너지 패권을 쥘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 SMR이 세계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굴뚝이나 돔 형태의 거대한 대형 원전과 달리 SMR은 크기가 기존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미니 원전이다. 원자로와 펌프 등 핵심 시설을 하나의 용기 안에 모두 담아내어 건설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데다, 적은 양의 우라늄만으로도 막대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다가오는 2035년이면 글로벌 SMR 시장 규모가 최대 620조 원까지 팽창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 원자력 업계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6월 11일 한국형 SMR 모델인 ‘스마트(SMART) 원자로’의 미국 수출을 위한 본격적인 전략 마련에 착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SMR의 중요성을 부쩍 강조한 가운데 유타, 아이다호, 와이오밍 등 3개 주가 앞장서 원전 정책을 넓히자, 국내 기업들은 미국 홀텍인터내셔널과 손잡고 SMR 공동 건설 협력에 나서는 등 기회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세계 각국의 기술 패권 경쟁도 만만치 않다. 영국 정부는 이미 SMR 개발에 25억 파운드(약 4조 6000억 원)를 과감하게 투자했으며, 캐나다는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먼저 상용화 테이프를 끊겠다며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71종이 넘는 다양한 SMR 모델이 앞다퉈 개발되고 있는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한국의 발 빠른 기술 진출 전략이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받고 있다.